세상에서 가장 못된 디자인 / the worst design in the world

서울의 한 가운데 남산,
이 남산을 가로지르는 2호터널, 
그리고 2호터널의 남쪽 입구에 이 카페가 있습니다.

요즘 더욱 뜨고 있는 이태원 경리단길 근처에 있는 이 카페, 오래된 건물을 새로 고친 분위기가 좋아보입니다.
그럼 내부를 한번 볼까요?

1층에는 다양한 미술, 디자인 책을 파는 매장이 있습니다. 건물 구조를 그냥 드러내는 이런 실내 디자인이 눈에 들어옵니다.
카페 자리는 2층과 3층입니다. 그럼 올라갑니다.

2층 자리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 이상한 물건들이 벽에 걸려 있습니다. 화장실 두루말이 휴지, 과자 봉지, 그리고 왠 이상한 기계까지. 벽에는 `디자이너가 삐뚫어질테다’라는 요상한 글귀가 적혔습니다. 이게 무엇인지는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힌트가 없으니 올라가 봐야겠죠.

2층입니다. 콘크리트 소재를 드러낸 분위기가 괜찮습니다. 깔끔하고 조용합니다. 
커피 마시기엔 좋아보입니다. 혼자 책을 읽는 손님들도 있는 걸 보니 오래 있어도 별 말을 안하는 듯.

올라온 김에 3층으로 갑니다.

3층도 개성적이군요. 시멘트 벽돌을 그대로 활용했고, 벽지를 다 뜯어낸 벽이 그대로 인테리어가 됩니다. 

바로 앞 가로수 이파리들과 마주치는 전망과 함께 눈에 띄는 것은 독특한 샹들리에. 뭔가 작가의 작품 같습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2층 자리에 앉아봅니다. 그런데 카페마다 옆에 서로 다른 이상한 것들이 있습니다.


하얀 실내화 같은 신발, 그리고 옆에는 동영상이 나오는 디스플레이. 이건 뭘까요?


신발에는 반짝거리는 장식이 달려 있군요.


맞습니다. 이 신발, 성적 호기심이 왕성한 사춘기 남학생들이 실내화에 유리를 붙여 여성들의 치맛속을 훔쳐보는 바로 그 신발입니다. 그냥 거울을 붙이면 의심을 받으니까 아예 장식처럼 거울을 붙인 것입니다.


또다른 자리에 있는 이 것. 이상하기는 더 한데 무슨 물건인지는 더욱 아리송합니다. 

이 물건의 정확한 이름은 `성추행을 돕는 디자인’입니다. 저 가짜손이 쇼핑백을 들고 있는 적을 해주면, 진짜 손으로는 나쁜 짓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바로 이렇게 말이죠.

아니, 그러면 이 카페는 도대체 뭐하는 곳인데 이런 디자인을 이렇게 늘어놓고 있는 걸까요?

이 카페의 이름은 `테이크 아웃 드로잉 녹사평’. 대안 미술공간인 `테이크 아웃 드로잉’이 운영하는 녹사평점입니다. 독특한 미술 전시를 하는 일종의 전시장입니다. 
젊은 기획자 세 명이서 5년 넘게 운영해오고 있는 테이크 아웃 드로잉은 작가들을 발굴해 새로운 방식의 전시를 해왔습니다. 물론 전시에는 많은 돈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전시 공간으로도 쓰고, 자기네 운영 자금도 마련하기 위해 카페를 연 것입니다. 
그리고 또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미술 전시공간의 고정관념을 깨고 카페로 위장해 동네로 들어가보자는 것입니다. 생활 속 공간이 미술 공간이 되는 그런 의도입니다.

이번 전시는 `못된 디자인’이란 전시입니다. 저 성추행용 가짜 손처럼 못된 짓을 하기 위한 디자인 제품들을 선보이는 것이 전시 컨셉입니다. 제로랩이란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두 젊은 산업 디자이너 장태훈(31), 김동훈(30)씨의 `못된’ 작품들 10가지가 전시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분들입니다.


이 두 사람은 왜 이런 나쁜 디자인을 만든 것일가요? 

그건 `착한 디자인’ 때문이었습니다.

`착한 디자인’은 최근 몇년 새 디자인계에서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디자인 경향입니다. 쉽게 말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디자인, 큰 돈 안들이고 문제를 해결하게 돕는 디자인입니다. `적정기술’이란 말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디자인이란 개념은 처음 등장할 때 물건을 값비싸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보다 좋은 물건, 보다 편리한 물건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값싸게 보급해서 생활을 윤택하게 하자는 것이 근대 디자인의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디자인이 산업에서 중요하게 되면서 디자인은 이제 물건값을 올리는 기술 정도로 여겨지고, 디자이너들은 클라이언트들의 요구에 종속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이런 현실을 각성하고 디자인이 단순한 포장 기술이 아니라 삶을 돕는 해결방식임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흐름이 바로 `착한 디자인’입니다. 열악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디자인, 친환경적인 디자인이 주를 이룹니다.
대표적인 것이 이런 겁니다.


가장 대표적인 `착한 디자인’ 또는 `적정기술’로 꼽히는 라이프 스트로(Life Straw)란 휴대용 정수기입니다.
물 사정이 열악한 아프리카에서는 마실 만한 깨끗한 물이 부족합니다. 그렇다고 정수기를 사기에는 경제적 여건이 따라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물로 인한 질병으로 목숨을 잃습니다.
그래서 디자이너들이 개발한 것이 이 라이프 스트로입니다. `생명을 구하는 빨대’라는 이름처럼 빨대 구조고 들고다니기 좋게 작아 물을 빨면 바로 정수되어 마실 수 있게 됩니다.

또다른 걸작 디자인으로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큐드럼(Qdrum)이란 물통입니다. 이게 왜 대단하냐고요?
기존 물통은 물을 잔뜩 넣으면 무거워서 옮기기가 힘듭니다. 트럭이 없으면 무용지물이죠.
큐드럼은 물통을 원형 바퀴처럼 만들어서 물을 가득 채워도 쉽게 끌고 갈 수 있습니다. 실제 이 물건은 어린아이도 쉽게 물을 운반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 하나가 100리터의 물을 옮길 수 있습니다.

또다른 유명 사례 하나만 더 소개합니다.

무엇인지 짐작이 가시나요?
아이들 놀이기구처럼 보입니다만, 이름을 들어보시면 눈치 채실 수 있습니다. 저 도구의 이름은 `플레이 펌프’입니다.
그러니까 놀이하면서 물을 퍼올릴 수 있는 펌프입니다. 아이들이 빙글빙글 돌리고 놀면 물이 나옵니다. 
이런 구조거든요.

아이들에겐 놀이 기구가 되고, 마을에는 물펌프가 되는 것. 이런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착한 디자인’입니다.
당연히 착한 디자인은 중요하고, 의미가 큽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디자이너들이 이렇게 사람들을 돕는 착한 디자인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이 왜 중요한지 가장 잘 보여주는 디자인이 바로 이 착한 디자인입니다.

그런데 왜 두 젊은 디자이너는 거꾸로 `못된 디자인’을 시도했을까요?


그건 문득 든 생각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착한 디자인은 물론 중요하고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 디자인계에서 너무 착한 디자인, 친환경성 이런 것들을 강조하다보니까 거꾸로 기존의 디자인이 상대적으로 `못된 디자인’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그래서 착함, 친환경이란 개념들이 너무 억압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착한 디자인이 있으므로 기존의 디자인은 나쁜 디자인으로 몰릴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 기존의 대다수 디자인은 정말 `나쁜 디자인’인 것일까 의문이 들었어요. 그렇지는 않잖아요. 진짜 나쁜 디자인을 만들어보면 기존의 디자인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 입증이 될 것이고, 그래서 작정하고 `못된 디자인’을 만들어 개념의 상대성에 의문을 던져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착한 디자인은 좋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다만 `이러이러한 것들은 착한 디자인’이라고 규정할 때 `착한 디자인이 아닌 것들은 나쁜 디자인’처럼 여기지는 말자는 것이죠. 
그래서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나쁜 디자인을 만들어 이번 전시에서 선보였습니다. `자, 보라고. 나쁜 것은 이런 것이야’라고 말하는 이상한 전시회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이 묘한 반지는 `덤 상품 해킹하기’란 작품입니다. 저 반지는 그냥 금속 반지인데 폭이 넓어보이지만, 반지 속에서 스카치 테이프가 나옵니다. 

마트에 가서 이 반지를 이용 스카치 테이프로 물건을 두개 묶으면 `1+1 상품’인 것처럼 속여 물건 하나 값만 내고 2개를 사올 수 있게 해줍니다.


이 작은 기계는 누르면 “삐”하고 소리가 납니다. 이걸 이용하면 버스를 무임승차할 수 있습니다. 버스 판독기에 지갑을 대는 척하면서 손에 숨긴 이 기계를 누르면 삐 소리가 나기 때문에 기사 아저씨가 속는 것이죠.

이 작품도 재미있습니다. `남의 디자인에 기생하기’란 작품입니다.


스티커입니다. 특이한 점은 인식 장치인 `큐알 코드’ 스티커란 점. 이 스티커 큐알코드를 다른 큐알 코드 위에 붙이면 사람들은 원래 물건의 인터넷 사이트가 아니라 다른 사이트로 연결됩니다. 


이것도 나쁜 디자인 작품입니다. 이름하여 `공중저금통’.
이 공중전화기는 실은 고장난 전화기입니다. 당연히 전화를 걸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내부는 이렇게 고쳤습니다.


사람들이 동전을 넣으면 전화가 걸리는 게 아니라 저 저금통으로 들어갑니다. 
전화가 안걸리면 사람들은 `전화가 고장나 돈을 먹었나보다’고 대부분 그냥 가버리겠죠. 


이건 뭘까요? 삽은 삽인데, 손잡이가 장난감인 삽입니다.
장난감 부분은 삽질을 하면 불이 번쩍 거리고 소리가 납니다. 아이들이 그 소리가 재미있어서 계속 삽질을 하게 만드는 삽, 그래서 실은 어린이 노동력을 착취하는 못된 삽입니다. 착한 디자인의 패러디죠.

그리고 이런 기계도 있습니다.


이 기계는 합성수지로 특별한 모양을 만들어냅니다. 이걸로 두 사람은 아주 간단한 플라시틱 만능 열쇠를 만들었습니다. 
열쇠의 이름은 `생필품 도둑 키트’. 이런 짓을 할 수 있습니다.


네, 공중화장실 휴지를 훔쳐올 수 있습니다. 
저 공중화장실 롤휴지통은 아주 간단한데, 손으로는 열리지 않습니다. 저 도구만 쓰면 쉽게 열 수가 있지요.

자, 그러면 처음 카페 입구에 있던 것들의 의문이 풀립니다. 바로 이것들.


저 벽에 걸어놓은 물건들은 이 두사람이 직접 만든 `못된 디자인’ 도구들로 “취득해온 것들”이랍니다. 물론 나중에 돈은 다 지불했다고 하네요. 실제로 시도해보니 의외로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해서 오히려 더 놀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추행과 치맛속 엿보기는 당연히 시도 안했다고 두 사람은 덧붙였습니다.

이 전시회는 착한 디자인이 실은 나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물론 전혀 아닙니다. 디자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면서 착함과 나쁨의 상대성, 나쁜 디자인도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 등 다양한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착한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이 착한 디자인을 세계에 알린 책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을 보시면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 희한하고 재미있고 의뭉스러우면서 질문을 던져대는 `못된 디자인’을 만나고 싶으시다면 `테이크 아웃 드로잉 녹사평'(02-790-2637)로 가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카페여도 커피 안 마시고 전시만 볼 수 있고, 오전 11시부터 밤 12시까지 하기 때문에 늦게가도 보실 수 있습니다. 전시는 6월19일까지. 

by 구본준  http://blog.hani.co.kr/bon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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