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더 인정받는 공간 디자이너 “보이드 플래닝”

 

보이드 플래닝(Void Planning)은 1997년에 문을 열었다. 구조 조정과 사회적 타살이 난무했던 IMF 사태를 이 신생 디자인 스튜디오는 굳건하게 버텼다. 이들은 이후 영리하게도 국내보다 해외 언론을 먼저 공략했다. 굵직한 해외 디자인 어워드에서 당당하게 수상도 했다. ‘한국 디자인’을 내세우는 다른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와 달리 젊은 동시대적 감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최근 아랍에미리트에 있는 작은 찻집인 ‘티 숍(Tea Shop)’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보이드 플래닝. 강신재와 최희영, 이 부부 디자이너는 핸드폰이 아니라 공간 디자인을 수출한다.


건국대 실내디자인학과를 졸업한 강신재와 최희영. 이 두 디자이너가 1997년에 설립한 디자인 그룹이 보이드 플래닝이다. 넥슨 사옥, 티오도 등이 대표작. JCD 어워드(일본 상업 공간 어워드), 독일의 콘트랙월드 어워드 등에서 주요 부문을 수상하며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사진에서 왼쪽이 강신재, 오른쪽이 최희영이다. www.voidplanning.co.kr

우선 ‘보이드 플래닝’이라는 이름의 뜻이 궁금합니다.
강신재(이하 강) 지금 생각하면 촌스러운데, 처음 저 혼자 활동할 때는 ‘보이드 디자인’이란 이름을 사용했어요.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사회에 나와 맨땅에 헤딩하던 시기였습니다. 5년 정도 1인 스튜디오로 일하다 1997년 최희영 소장과 함께 회사를 법인으로 바꿨습니다. 그때 이름이 ‘보이드 플래닝’이 된 거예요. ‘보이드’의 사전적 의미는 ‘빈 공간’이고, ‘플래닝’은 ‘계획하다’입니다. ‘빈 공간을 계획하다’,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이름으로는 최고의 조합 아닌가요?

공간 디자이너가 된 계기가 있나요?
최희영(이하 최)
 딱히 계기는 없어요. 고등학교 때 계속 진로 고민을 했는데, 무작정 디자이너가 좋겠다 싶었어요. 공간뿐만 아니라 디자인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중 공간 디자인이 특히 저한테 잘 맞았습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전문성이 있는 직업인 것 같았고요. ‘이 일이면 남편한테 얹혀 살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 수 있겠구나’ 싶었던 거죠. 게다가 제가 학교를 다니던 1980~90년대에 활동한 인테리어 디자이너 중 대다수가 비전공자였어요. 전문적으로 배우고 나면 희소성 있는 직업이 되리라는 게 제 판단이었습니다. 성격 자체도 워낙 계획적이고 전략적인 편이라 디자이너의 속성과도 잘 맞았고요. 강 군대 다녀온 뒤 삼수 해서 대학에 갔으니 늦깎이 신입생이었죠. 세 번을 떨어지다 보니 단순히 ‘대학 합격의 기쁨’을 느끼고 싶어서 원서를 넣었는데, 그곳이 건국대학교 실내디자인학과였어요. 그때가 1989년도였는데 당시엔 실내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확실히 자리 잡기 전이라 사실은 정확히 무엇을 공부하는 과인지도 모르고 들어간 거죠. 2학년 때부터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그 이후부터는 지독하게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죠.

강 소장님은 이대 앞의 두세 평짜리 의류 매장 디자인으로 일을 시작한 걸로 압니다. 첫 프로젝트에서 배운 점이 있다면요?
 별로 유쾌한 기억이 아닌데….(웃음) 정말 처절했어요. 31살에 대학을 졸업했으니 취업하기가 애매했죠. 그래서 이대 앞의 두세 평짜리 공간을 400만~500만 원 받고 디자인하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이 돈으로 일하려면 모든 작업을 내 몸으로 때워야 해요. 페인트칠부터 간판 달기까지, 웬만한 시공은 직접 다 하는 거죠. 그때 알루미늄 판을 잘라서 그라인더로 갈아 가구를 만드는 디자인을 선보였어요. 그렇게 한 가게가 대박이 난 거예요. 입소문이 나면서 이대 앞 의류 매장 일을 많이 하게 됐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기억이 저에게는 소중하죠.

보이드 플래닝 설립 시기가 IMF 경제 위기와 맞물립니다. 힘들지 않았나요?
 1997~98년도에 주병진 대표가 이끄는 속옷 브랜드 보디가드와 제임스딘의 백화점 매장 디자인을 했어요. 전국에 있는 백화점의 매장 디자인을 했으니 많은 돈을 벌진 못해도 스튜디오를 근근이 운영할 정도는 되었습니다. 보이드 플래닝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1999년 <월간 인테리어> 2월호에 역삼동 카페 ‘스푼’이 소개되면서부터예요.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미니멀한 디자인을 카페 ‘스푼’이 조금 앞서서 보여줬거든요. 당시 공간에 미니멀리즘을 적극 도입한 곳이 없었는데, 이걸 높게 평가해준 것 같습니다.

보이드 플래닝을 세상에 알린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무엇인가요?

강 & 최 2006년 독일의 콘트랙트월드 어워드(Contractworld Award)에서 대상을 받은 ‘창동 설렁탕’은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은 프로젝트입니다. 한국 음식점이다 보니 한국적 감성을 가미할 수밖에 없었어요. 높이가 3m나 되는 기둥에 사람 손으로 손톱만 한 목 구슬을 일일히 감았습니다. 배흘림기둥의 형태와 직접 염색한 오방색 구슬로 한국적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한국 전통 건축 개념인 툇마루도 공간에 적용했죠. 사실 독일이란 나라가 동양인에게 배타적인 편이라 저희도 수상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를 시발점으로 해외에서도 보이드 플래닝이 알려졌어요. 그 뒤 네덜란드 인테리어 전문 잡지 <프레임Frame>에 ‘티오도’라는 멀티 숍이 소개되면서 많이 알려지게 됐죠. ‘티오도’는 숲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편집 매장이에요. 저희가 1990년대 중반부터 공간에 ‘자연’이란 키워드를 담아왔는데, 자연, 숲이 보여주는 이미지를 ‘거창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보여주려고 했던 공간입니다. 2001년에 선보인 넥슨 사옥도 당시에는 신선한 디자인이라는 평가였습니다. 자연적인 모티브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한 디자인의 일환으로 재활용 소재와 친환경적인 소재를 주로 활용해서 디자인했죠. 누구나 하는 구태의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저희는 그런 것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조금 다르게 보여주고자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넥슨은 클라이언트이면서 오랫동안 보이드 플래닝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파트너이기도합니다.
 넥슨에서 처음 일을 의뢰받았던 건 2001년입니다. 당시 넥슨은 직원 수가 200명도 안 되는 규모의 회사였습니다. 클라이언트가 디자인을 보는 눈이 굉장히 높은 데다 마인드 자체가 달랐던 게 인상적이었어요. 넥슨의 첫 번째 요구 조건은 사장실이나 임원실을 따로 만들지 말아달라는 거였습니다. 일반 직원과 똑같은 공간이면 된다고 하더군요. 지금이야 사옥을 개방적으로 만드는 시도가 일반적이지만, 당시에는 놀라운 발상이었습니다. 수평적 관계를 추구하는 회사였던 거지요. 직원 연령대도 20대 초반이 주축을 이루었고요. 이런 점이 저희와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현재는 서로 의견을 존중하며 일을 진행할 정도로 절친한 사이로 발전했습니다. 신뢰가 쌓여서 그럴 수 있는 거죠.

창동 설렁탕 보이드 플래닝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첫 작업이다. 툇마루나 배흘림기둥에서 한국적 디자인이 느껴진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개인 클라이언트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만나는 일이 잦다 보면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나름의 방법도 생길 것 같은데요.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초창기에 만난 클라이언트는 모두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클라이언트 운이 있었어요. 상업 공간의 경우에도 모두 오픈 후 장사가 잘됐던 편이라 결과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소개해주는 식으로 연이어 작업이 들어왔습니다. 언제더라… 일산의 한 카페를 의뢰받았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의 일이라 할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클라이언트의 미모가 뛰어나 그냥 하기로 한 적이 있어요.(일동 웃음) 카페 인테리어의 90% 정도가 완성되니 클라이언트의 오빠라는 사람이 나타나서는 이것저것 다 트집 잡기 시작하더군요. 완전 깡패였죠.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요.(일동 놀람) 그때 마음고생을 많이 해서 그 뒤로 ‘모르는 클라이언트와는 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생면부지의 클라이언트 일이 들어와서 만나보면 이젠 점쟁이처럼 느낌이란 게 와요. 잘못될 기미가 보이는 일은 아예 시작을 하지 않죠. 그래서 다른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에 비해 그리 일이 많지 않은 편이에요.
 클라이언트가 여성이거나 대기업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는 강 소장이 진행하고, 패션 브랜드와의 작업이라면 내가 미팅에 적극적으로 나가는 편이에요. 역할 분담이 있지요.

혹시 보이드 플래닝의 작업 중 장사가 잘 안 된 상업 공간도 있나요?
 상업 공간인 경우 개인 클라이언트는 본인이 평생 번 돈을 탈탈 털어서 가게 하나를 차립니다. 정말 처절한 거죠. 디자이너가 공간을 만들어줬는데 그게 망하면 완전 역적이 되는 겁니다. 디자이너로서 처절한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저희가 한 상업 공간은 한 번도 망한 적이 없어요.

구체적인 디자인 과정이 궁금합니다.
 공간이 주는 첫 느낌이 굉장히 중요해요. 경험이 쌓이다 보면 장소가 주는 첫 느낌이란 게 분명 있어요. 그 뒤에는 최 소장과 깊이 있게 상의합니다.
 강 소장의 접근은 감성적인 데 반해 저는 분석적인 편입니다. 패션 관련 프로젝트일 때는 브랜드 이미지가 선명하게 드러나야만 하죠. 때론 기업 이미지가 들어가야 할 때도 있고요.

어느 인터뷰에서 좋은 디자이너는 콘셉트 메이커 역할까지 수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설프게 마감을 흉내 내는 게 아니라 개념을 잡고 흐름을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설명했는데요. 이를 보이드 플래닝은 어떻게 풀어내고 있나요?
 2000년대 초반까지 우리의 디자인은 무언가 다르게 튀어보려는 디자인이었어요. 말 그대로 공간을 채우는 디자인을 했습니다. 넥슨 사옥은 보여주고 싶은 게 많은 디자인이었던 것 같아요. 개념보다 직관적으로 풀어낸 비주얼에 치중한 작업이었죠. 물론 그런 디자인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보이드 플래닝은 공간의 개념을 정확히 잡은 뒤 프로세스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티오도’가 숲이라는 디자인 콘셉트로 진행했다는 걸 고객이나 사용자에게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어요. 그럼에도 공간을 경험하면서 사용자가 공간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면 행복한 거죠.


보이드 플래닝은 한국성에 천착하는 기존의 공간 디자이너와 확연히 다른 디자인을 보여줍니다. 보이드 플래닝의 디자인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우리보다 앞선 세대의 공간 디자이너는 실내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습니다. 대신 우리 세대와 달리 예술적 감성을 타고난 분들입니다. 그건 절대 못 쫓아간다고 봅니다.
 선배 디자이너들이 한국적인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는 건 잘 압니다. 대부분이 디자인에 한국적인 정서를 녹여내려 고민하고 노력하죠. 한국 사람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에 비해 우리는 ‘한국적인 디자인’에 대해 그다지 고민을 많이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프로젝트의 성격상 한국의 정서가 녹아 있어야 하는 프로젝트를 제외하면요. 창동 설렁탕 같은 경우죠. 저희는 ‘자연’이란 키워드를 공간에 담으려 노력합니다.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너무 철학적이거나 거창하지 않게 그저 ‘소박하게’ 담고자 합니다. 2005년 이후 대부분의 작업에 적용했죠. 이미 언급했듯 ‘지속 가능한 디자인’도 빼놓을 수 없는 보이드 플래닝의 주제입니다. 그런 노력과 고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1,2 넥슨(NEXON) 홍보관 2001년부터 보이드 플래닝과 파트너십을 가지고 함께하는 넥슨. 이들의 2006년 홍보관 디자인이다. 기업의 연혁을 시대별로 보여주는 서사보다 기업의 상상력을 담고자 했던 프로젝트다. 천장의 하늘 이미지, ‘NEXON’ 글자를 이용한 구조물 등으로 관람객의 기대감을 조성하며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했다.

매스스터디스의 조민석 대표 이후 두 번째로 <프레임>에 소개된 한국 디자이너입니다. 2007년에는 그레이트 인도어스 어워즈(The Great Indoors Awards) 최종 본선에 오른 총 23개 작품 중 유일한 국내 디자이너 작품이었습니다. 보이드 플래닝이 해외에서도 통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요?
 앞서 언급했듯 ‘창동 설렁탕’ 같은 프로젝트는 한국의 정서를 가미해 어필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보이드 플래닝이 한국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는 건 아닙니다. ‘한국적인 디자인’을 내세우면 오히려 해외에서 쉽게 먹힐 수 있을지 몰라요. 그들은 동양적 이미지를 굉장히 신비롭게 생각하니까요. 일본 디자인이 부각되는 이유도 그런 동양의 정서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보이드 플래닝의 디자인을 국적 불문하고 어느 나라 사람들이 보더라도 이야깃거리가 있는 공간으로 느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그런 고민과 노력을 했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인정받게 된 것 같습니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힘도 분명 있어요. 은연중에 한국의 정서가 묻어 나올 수는 있겠죠. 2004년 이전의 작업은 우리가 봐도 가벼워요. 보이드 플래닝의 공간 디자인을 그래픽적이라고 평가하는 분도 많지만, ‘티오도’ 같은 경우는 기존의 평면적 디자인이 어떻게 입체적 공간으로 바뀔 수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이미지가 구체적인 공간으로 와 닿는 작업, 그게 바로 비우는 작업이에요.

공간에 자연을 녹이려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구구절절 설명은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자연만큼 아름다운 것이 또 있나요? 모든 인류의 문명이 자연에서부터 시작됐고,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듯 결국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스럽다’의 사전적 의미가 ‘억지로 꾸미지 아니하여 어색함이 없다’ 입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거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있는 모습 그대로 소박하게 공간에 담고 싶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을 보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준다면 디자이너로서 정말 행복한 거죠.



1,2 티오도 2005년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 들어섰던 멀티 매장이다. 1층은 ‘티오도’란 이름의 곰 캐릭터를 판매하는 매장이었고, 2층은 신진 디자이너의 작업을 소개하는 공간이었다. 나선형 계단, 거울로 만든 반사되는 이미지, 그루터기 형상의 진열대 등 ‘숲’이라는 디자인 콘셉트를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사적인 질문인데, 두 분은 디자인업계에서 부부 디자이너로도 유명합니다. 어떻게 만나셨나요?
 같이 학교를 다녔지만 캠퍼스 커플은 아니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학교 다닐 때부터 내가 마음은 있었던 것 같아.(웃음) 최 소장이 당시 유명했던 디자인 스튜디오 개오망을 다니다 유학 갈 생각으로 그만뒀어요. 이때다 싶어 잠깐 보이드 디자인에 와서 아르바이트를 하라고 했지요. 3개월 정도 단기 아르바이트였는데, ‘지금 놓치면 평생 후회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떠나기 바로 전날 고백했어요. 그때 불꽃이 튄 거죠.(웃음) 아마 최 소장도 싫진 않았던 모양이에요. 최 소장이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난 뒤 매일같이 전화했어요. 한 달 전화비가 장난이 아니었죠. 1997년 최 소장이 귀국하자마자 바로 결혼했습니다.

부부 디자이너로서 두 분의 작업 방식과 생활이 궁금합니다.
 우린 일이 거의 전부예요. 공과 사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 같아요. 무언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집이든 사무실이든 그때그때 이야기해요. 라이프스타일이 이미 그렇게 돼버렸어요. 이런 생활을 신기해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24시간 아내와 붙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보통 남자들은 ‘질식할 것 같다’고 하잖아요? 우리는 집에서도 개인적인 이야기보다 일 이야기를 더 많이 해요.
 사무실과 집이 같은 건물에 있다 보니 불편한 점이 이미 많이 중화되었죠. 부부 디자이너라고 딱히 힘들거나 어렵다거나 그런 것도 없어요. 대신 주말만은 철저하게 각자의 시간을 보내요. 일할 때 처음 콘셉트를 정리하는 과정에서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에요. 구체적인 진행에 들어가면 내가 하드웨어적인 걸 맡고, 섬세한 최 소장이 소프트웨어적인 걸 담당합니다. 예를 들어 건물을 디자인하면 외관은 내가, 인테리어는 최 소장이 책임지는 식이에요.

보브(VOV) 사옥 보브는 젊은 층을 타깃으로 색조 화장품을 판매하는 회사다. 세상의 모든 색을 담겠다는 의지를 담은 보브의 콘셉트는 ‘블랙 & 화이트’. 이 양면적인 ‘블랙 & 화이트’라는 콘셉트를 보이드 플래닝은 미래 지향적이면서 자연스러운 공간으로 보여주려 했다. 디지털과 네이처를 결합한 ‘디지네이처(Diginature)’라는 디자인 언어로 풀어낸 공간에는 형태보다 공간감 있게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 게 눈에 띈다.

서로 반대 의견이 나올 때 조율은 어떻게 하나요?
 디자이너에게 가장 두려운 건 매너리즘에 빠지는 건데, 우리는 서로에게 아주 날카롭게 지적해줘요. 절대 매너리즘에 빠질 일이 없죠. 여성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감성이 있고, 반대로 남성만이 가진 감성도 있습니다. 이런 것이 상호보완 작용을 하는 것 같아요. 10년 넘게 같이 일하다 보니 갈등 요소는 이미 많이 완화됐어요. 경쟁 프레젠테이션에 참가하면 상대는 혼자인데, 우린 두 사람이잖아요? 1대 2로 대결하는 거죠. 긍정적으로 봅니다.

디자인 스튜디오를 계속 소규모로 운영할 계획이라 들었습니다.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나요?
 ‘디자인 행위 없이 단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라면 차라리 일하지 말자’. 이건 우리 철칙이에요. 사실 몇 번 돈을 벌기 위한 프로젝트를 했는데, 우리랑 안 맞더라고요. 직원을 늘리다 보면 월급을 줘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하기 싫은 프로젝트도 해야 해요. 그럼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죠. 8명 이상 직원이 늘어난 적은 없어요. 현재는 저희 둘을 빼고 6명입니다.

디자이너는 트렌드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서 영감을 받나요?
 가와쿠보 레이(Kawakubo Rei), 와타나베 준야(Watanabe Junya) 같이 콘셉트 기획력이 있는 디자이너를 좋아합니다. 꼼데가르송(Comme des Garcons)에서 나온 책을 보면 사진 한 장에 담긴 표현력도 예사롭지 않아요. 모든 유행의 시작은 패션이라 여겼는데, 요즘은 예술인 것 같아요. 특히 예술의 고정관념을 뒤집었던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을 좋아합니다. 개념은 예술에서 온다면 이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게 패션이에요. 색감, 질감, 형태 등에서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패션 디자이너들이 참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보편성, 대중성 등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요.
 사실 요즘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트렌드에 크게 뒤처지지 않을 겁니다. 최근 관심은 현대 미술입니다. 사회·문화의 흐름에 큰 변화가 있을 때 그 중심에는 항상 예술가가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좋은 전시는 꼭 찾아서 보는 편입니다. 외국을 나가더라도 좋은 갤러리나 박물관 같은 곳을 절대 빼놓지 않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작가가 생겼어요.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나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등 최근에 대중에게 주목받는 작가들이죠.


스와로브스키 엘리먼츠(Swarovski Elements) 지난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선보인 스와로브스키 전시관. 투명한 레이어의 중첩이 만들어낸 깊이감, 빛이 보여주는 영롱함을 매력적인 소재로 표현할 수 있어 디자이너로서 즐거운 프로젝트였다고. 직물의 기본 구조인 ‘씨실과 날실’을 콘셉트로 진행해 직접 손으로 완성한 벽면 구조의 수직 실이 인상적이다. 여기에 들어간 실의 길이만 5만m.

강신재 소장님은 영화감독이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언젠가 영화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습니다. 만약 만든다면 어떤 영화일까요?
 ‘<얼지 마, 죽지 마, 부활할 거야Don’t Move, Die And Rise Again>’라는 영화로 1989년 칸에서 신인 감독상을 받은 비탈리 카네프스키 감독의 당시 나이가 54세였어요. 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거죠.(웃음) 그 꿈은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요. 거창하게 장편 영화를 만들어서 재산 거덜낼 수 없으니 일단 단편 영화로 시작해야죠. 일단 영화는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울한 영화보다 밝고 즐거우며 사랑스러운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이 스토리라는 사람이 있고, 단적으로 비주얼과 사운드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후자 쪽이에요. 왕가위 영화처럼 비주얼과 사운드만으로도 충분히 내가 생각하는 단편 영화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인테리어 공사는 잔금을 안 줘도 된다는 선입견이 박혀 있는 거죠.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그런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공간 디자이너로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느낀 점을 들려주세요.
 저는 모든 디자인의 중심은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공간 디자인은 제품·BI 디자인 등을 넘나들 수 있어요. 필요하면 브랜드 아이덴티티나 네이밍 작업까지 해요. 항상 전체적인 고민을 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다른 디자이너에 비해 정당한 평가를 못 받고 있어요. 유독 돈 떼인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많아요. 사실 인테리어 디자인은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라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긴 합니다. 그래서 스타일리스트나 비전문가가 하는 경우도 종종 있죠. 근데 저는 디자이너로서 존중받지 못한다면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가끔 대기업이 ‘입찰비가 200만 원이니 일주일 만에 디자인 뽑아내라’고 전화해요. 그게 말이 돼요? 디자인을 어떻게 일주일 만에 풀죠? 대기업조차 이러니 절망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회의가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힘들고 고집스럽더라도 공간 디자이너의 정체성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나마 그런 수준 낮은 클라이언트는 피해 가는 편이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아직까지는 공간 디자이너를 우습게 생각해서 제대로 공사를 마쳐도 잔금을 못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인테리어 공사는 잔금을 안 줘도 된다는 선입견이 박혀 있는 거죠.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그런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빠른 시간 안에 공간 디자이너의 자존심을 지켜서 위상을 높여야 합니다.


티 숍 현재 아부다비에 진행 중인 프로젝트다.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건물에 들어갈 작은 찻집으로 동양의 정서를 한지를 이용해 은은하게 전달한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외국에서 어느 날 메일이 한 통 날아왔어요. 독일인인 클라이언트가 아부다비에 조그마한 ‘티 숍(Tea Shop)’을 열 생각인데, 우리가 디자인해주길 바란다는 내용이었어요. 일단 시작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콥셉트 시안을 보냈더니 우리를 바로 아부다비로 초대했습니다. 우리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궁금해 물어봤더니 보이드 플래닝이 해외에서 상 받은 프로젝트들을 유심히 지켜봤다고 하더군요. 특히 최근 작업 중 보브 사옥이 마음에 들었대요. 프로젝트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노먼 포스터(Noman Foster)가 설계한 건물에 들어갈 ‘티 숍(Tea Shop)’인데, 15평 정도로 작은 규모지만 천장고가 8m나 되는 독특한 공간이에요. 한국적 감성보다 동양의 모티브가 녹아 있는 가게예요. 소재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써서 한지를 뜰 때 쓰는 발로 전면 이미지 월을 만들거나 한지에 프린팅하는 작업 등을 적용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고민을 했죠.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설계비로 5000만 원을 요구했는데 아무런 통고 없이 칼같이 입금하더군요. 중간 점검 차원에서 시공 사진도 종종 보내주는데, 8월말이면 완성될 것 같아요. 어떤 방법으로든 해외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제 자신감이 좀 생겼어요. 앞으로 해외에서 보이드 플래닝의 작업을 더 많이 선보이고 싶습니다.


기자/에디터 : 인터뷰: 전은경 편집장, 정리: 임나리 기자 / 사진 : 인물 사진: 박기숙(둘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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